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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칼럼

金宗敦 대표의 글과 저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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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실패한 예술가!
Posted by 한국애드립잼음악교육협회 (ip:)
  • Date 2022-04-25 16: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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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으며 남은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클래식 전공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으레 선택하듯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여러 부담감을 이겨내기 힘들었고, 1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는, 아니 당분간은 음악을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유학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이리라.

긴 비행 시간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그 순간이었다.

불현듯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시는 음악을 하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러한 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심정은 음악밖에 모르던 20대 후반의 청년이 대한민국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감이었다.

그랬다.

나는 실패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실패한 예술가는 예술 그 자체의 실패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나는 명백히 실패한 예술가였다.

그 이후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보통 사람으로 살기 위해 수년 간 불안정한 신분으로 전국을 떠돌았고, 다행히도 그간의 누적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울산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수만 명의 실패한 예술가들이 세상에 배출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자의 반 타의 반 예술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적응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예술전공생들이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란 인문계열 전공생들이 전공을 벗어난 분야에 취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처절한 전향이다.

우리나라의 예술대학은 실패한 예술가가 되었을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는 예술 교육의 특수성도 있을 것이고, 교수들조차 실패한 예술가였던 적이 없었기에 그 방법을 전수할 밑천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도권은 이들에 대해 철저히 외면했고, 예술대학 졸업생들은 취업률 통계에서 조차 제외되다 보니 실패한 예술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그 행방조차 묘연하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은 궁지에 몰려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든 실패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든 그 길은 위태롭기만 하다.

다행히도 예술가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으나 실패한 예술가에 대한 대책과 관심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관심이 필요한 세상의 수많은 현안에 비해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정량화 되고 표준화 된 가치를 좇을 때 그들은 구도자의 마음으로 묵묵히 외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길은 우리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근원이 돼 왔다.

예술가들의 삶과 행위는 인류에 대한 숭고한 희생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실패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대리)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

원문보기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4569


[덧붙이는 글]

그의 글의 의도는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매년 배출되는 음악인들의 진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예술 전공생들이 성공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현실이다.

비단 예술전공자 뿐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매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음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기술이나 자격과는 달라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다.

나는 여기에서 성공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솔직히 음악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온들 할 게 없다.

왜냐면!

클래식이든 실용음악이든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화성학적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는 항상 그 음악이 그 음악이라 일반인들의 귀에는 이제 식상하게 된 것이다.

음악적 소스가 화성학의 범위 안에서만 창작되니 만날 듣는 것이 똑같은 스타일의 음악만 듣게 되므로 사람들에게 임펙트가 없다.

우리나라 음악의 창작 소스는 거의 100% 화성학에 기반하고 있다.

화성학이 음악의 중요한 이론적 바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화성학적 음악이란 조와 선율이 같은 조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을 말한다.

극히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자연스러운 음악이란 역으로 보면 곧 식상하게 되고 금방 싫증 나게 된다.

개성이 없어 재미가 없는 것과 같다.

음악에 대한 메리트를 느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이란 백화점 같은 곳의 매출 증대를 위한 분위기용이거나 카페나 커피숍, 레스토랑, 놀이공원 같은 곳의 분위기 내주는 용도 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물론 공연장 같은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 역시 화성학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많은 음악 전공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음반 제작이나 휴대폰 같은 알람 음악 제작, 게임 음악 제작 등과 같은 상업 음악 밖에 없다.

또는 조금 경제력이 있는 경우 교습소나 차리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이런 일에 대한 과소 평가의 의도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음악계나 교육계에 음악적 소스가 너무 편향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음악에는 화성학적인 음악 뿐이 아닌 모드(스케일) 음악도 있고 펜타토닉(스케일)적인 음악도 있고 블루스(케일)적인 음악도 있다.

화성학적 음악은 물론 각각의 세 음악들은 광활한 음악의 세계이다.

우리나라는 화성학적인 음악을 빼고는 뒤의 세 종류 음악은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이다.

세 종류의 음악이 국제 음악 무대에서는 지금까지 매우 중요한 음악 소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거의 문외한의 수준에 있다.

음악이란 특수한 분야이기에 대한민국 전체가 이런 문제점을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정부적 차원의 관심은 물론 음악과 관련된 모든 기관이나 음악에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교육 문제는 서정민 님과 같은 또는 우리 같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넓고 깊은 음악의 세계를 국민들이 경험하게 하려면 어릴 적부터 경험하고 체험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같은 음악의 감성을 느낌으로 더 나은 인격과 인성을 개발하게 되고 음악인들은 다양한 음악의 소스를 배우고 익혀 그 입지가 더욱 넓어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종돈[한국애드립잼음악교육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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